'95세 구속'은 남았지만…정교유착 수사는 어디로 갔나
수사는 결과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정교유착 비리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출범했을 때 국민이 기대한 것은 한 종교단체 지도자의 구속이 아니었다.
종교와 정치권 사이에 존재했을지 모를 조직적 거래와 권력형 유착을 규명하라는 것이었다. 합수본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꾸려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이 마주하는 장면은 무엇인가.
헤드라인에는 '95세 최고령 구속'이 등장했고, 수사의 중심에는 교단 내부의 횡령과 개인 비리 의혹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정작 합수본이 존재해야 할 이유였던 정치권 유착의 실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합수본은 스스로 답해야 한다.
정교유착을 수사하는 조직인가. 아니면 종교단체 내부 비리를 수사하는 조직인가.
물론 횡령 수사는 필요하다.
범죄 혐의가 있다면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횡령은 일반 형사부나 반부패 수사부서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영역이다. 굳이 '정교유착'이라는 이름의 특별수사 조직이 나설 이유는 정치권과 종교권력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히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수사의 무게추가 내부 회계와 개인 비리에 머물러 있다면, 국민은 본질에서 벗어난 수사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논란은 95세 초고령 피의자 구속이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라 수사를 위한 강제처분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사실 자체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도 이례적인 초고령 피의자 구속인 만큼, 그 필요성과 비례성에 대한 설명 역시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국민이 가장 먼저 접한 것은 구속의 법리보다 '95세 최고령 구속'이라는 상징이었다.
이 상징은 강렬했다.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수사의 본질을 가렸다.
언론은 최고령 구속이라는 기록을 반복했고, 여론은 고령 지도자의 신병 처리에 집중했다. 그 사이 정교유착 의혹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가장 큰 뉴스는 정교유착이 아니라 최고령 구속이 됐다.
수사가 본질보다 장면을 남긴 셈이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정치권에 대한 접근이다.
만약 종교단체가 조직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수사의 종착지는 종교단체가 아니라 그 영향력을 받아들인 정치권이어야 한다. 누가 도움을 받았고, 어떤 대가가 오갔으며, 정책과 공천, 권력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밝히는 것이야말로 정교유착 수사의 핵심이다.
그런데 국민의 시선에는 종교단체만 보일 뿐 정치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인상 자체가 합수본에는 부담이다.
수사는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이기도 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하게 겨누고 다른 한쪽은 보이지 않는다면, 수사의 신뢰는 결과 이전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합수본은 출범 당시 거창한 이름을 내걸었다.
'정교유착.'
그 이름은 단순히 종교단체의 비리를 수사하라는 뜻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흔드는 권력형 결탁이 있었다면 그 실체를 끝까지 밝혀내라는 국민적 요구를 담고 있다.
만약 최종 결과가 한 종교 지도자의 구속과 내부 횡령 수사에 머문다면, 국민은 합수본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요란한 출범은 있었지만 본질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최고령 구속이라는 기록이 아니다. 정교유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체적 진실이다.
합수본의 평가는 구속 인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무엇을 끝까지 밝혀냈는지가 역사의 평가를 결정할 것이다.